유학


미국 영어 연수와 자동차 사고

자동차 사고(1)
기다리고 고대하던 미국 영어연수를 위한 비자를 받고 얼마나 기뻤는지… 말로 표현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학교도 원하던 학교로 되었고, 가게되면 이거는 꼭 해봤으면 하고 바랐던것이 현실로 되고, 미국인 학교에 미국인 학생들과 나란히 등교하고, 외제차도 타고, 이거 정말이지 꿈만 같은데….
한국에서는 눈치코치로 마음놓고 살수 없는 싸고 좋다는 일본회사에서 생산한 새 승용차를 현금으로 구입해서, 너무나 만족하게 차를 운전해서 등하교를 하고, 방과 후에는 여지저기 가까운 거리를 드리이브도 하고, 마음껏 마음 멋을 내면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고, 후회가 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지요. 오들도 한참 마음 멋을 내면서 차를 운전해 학교에 갔어요. 수업 후 차를 주차장에서 빼 주차장을 나오는 중에 갑자기 난데없이 주차 되어있던 차가 번개같이 후진을 하면서 내차 운적석쪽 뒤범퍼를 꽝하고 받았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지금도 몸이 떨리고 무서워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는데, 다행히 사고를 낸 당사자가 좋은 사람이라, 순순히 자기 잘못을 인정하고, 보험회사에 전화해서 신고를 하고, 자기가 잘못했다고 고백 했어요. 근데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나와요. 새차 사고에다 일년후 귀국할때 팔려고 하는데, 이 사고때문에 판매가가 떨어지면 손해잖아요. 가격제대로 받지 못하면 어떻게 해요.

자동차 사고(2)
생각하면 할 수록 속상해요. 전화를 해도 말이 안통하니 통역관을 통해서 해야 되고, 설사 통역관이 있다고 해도, 내가 먼저 자동차 보험회사에 전화 한다는 자체가 손에 땀나는 일이잖아요. 누가 무슨 말을 할지도 모르고, 한두마디 알아 들어도 어떻게 대답을 해야 할지도 모르고, 설사 해도 제대로 했는지 조차도 알 수 없고. 보험회사에서 말을 해 주어도 어설퍼게 알아 들으니 그냥 불안하고, 초조하고, 가슴이 답답하고, 피가 거꾸로 흐르는 것만 같아요. 이렇게 힘든적이 없었어요. 그냥 울고 싶어요.
차 수리는 어떻게 해요? 어디에 가야 수리를 할 수 있는지도 모르고, 막상 찿아가도 그기서 차 수리를 제대로 할 수 있는지도 모르잖아요. 그리고 요구사항이 있어도 할 수도 없고, 말이 안통하는데 어떻게 해야되요. 새 차인데 수리를 개떡깥이 해놓고 돈을 바가지로 요구하면 어떻게 해요. 그리고 수리를 진짜로 잘 했는지, 수리비용은 정당한지도 모르잖아요. 그렇다고 따진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할 수 없잖아요.
지금 내 자동차 보험회사에 전화해서 사고 신고접수 했는데, 왜 그렇게 질문을 많이 하는지 짜증이 날 정도입니다. 내 보험회사고 내돈 받으면서 왜이리 많이 묻는지… 한국에서는 전화하면 보험사에서 알아서 다 처리해 주는데, 여기 미국은 아닌가 봅니다. 그러면 왜 보험가입자에게 비싼 돈을 받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돈은 돈대로 받고 일은 제대로 해 주지도 않고…. 그렇다고 당장 찿아가서 따질 수도 없고. 어디있는지 알아야 찿아가든지 말든지 할것 아닙니까. 내 정보 다주고 상대방 정보까지 다 주었는데. 내 보험회사고 내 돈을 받으니까, 상대방 보험회사에 내 대신 연락해서 일처리 해 주면 안되나요?

자동차 사고(3)
지금 얘기가, 상대방이 100% 잘못을 인정했고, 상대방 정보와 보험회사 전화번호, 보험번호 다 주었는데 못할 이유가 없는데, 왜 나보고 상대방 보험회사에 연락을 하라고 하는지 모르겠어요. 생각만해도 손이 떨리고, 얼굴이 화끈거리고, 땀이나는데, 나보고 상대방 보험회사에 전화를 하라고 하니, 진짜 눈앞이 캄캄 합니다. 사고를 당하고도 이런 일을 해야 한다니 이만저만 속상한게 아닙니다. 이런 힘든 사항을 말하니, 그러면 내 보험으로 차를 수리하라고 하는 내 보험사 직원이 얼마나 미운지… 먼저 내 보험으로 차를 수리하고 비용을 상대방 보험에서 받는 방법도 있다고 하면서, 전액다를 상대방 보험사에서 받아낸다는 보장을 할 수 없고, 언제까지 받아낸다는 보장도 할 수 없다는 얘기는 또 무슨 소린지… 이거 내 보험회사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듭니다. 기가 맊히는 일 아닌가요? 아니, 보험료 밀린적없이 꼬박꼬박 날짜 맟추어 다내, 그것도 유학생이라는 프리미엄 포함해서 엄청나게 많이 내고 있고, 사고 난적도 없고, 문화적 언어적 장해 때문에 도움을 청하는데 안된다니. 고객이 청하는데 안된다. 이거 완전히 배짱 장사 하는거 아닙니까? 다 니가 알아서 해라. 보험사는 돈만 받으면 된다. 아니 그러면, 보험사가 고객에게 하는게 뭐가 있나요?
이런 말을 속시원히 하고싶은데, 이거 도데체 말을 할 수가 없으니… 그냥 속알이를 하고 있습니다. 너무 속상해서 챙피를 무릎쓰고 통역관이 통역하는 동안 엉엉 울었어요. 전화기에 대고 엉엉 울었습니다. 울면서 생각 했어요. 내가 지금 왜 울지? 정작 울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고 보험사 직원이어야 되는데… 아니 그것도 아니네. 울어야 할 사람이 아무도 없네. 이쯤되니 자신이 서글퍼 집니다. 왜 내가 서글퍼 해야 되나 하고 또 생각을 합니다. 아무래도 새차 망가진것 때문에 하소연할 곳이 없어서 속상해서 그냥 울었던것 같습니다. 욕을 하자니 그것도 그렇고, 고함을 치자니 그것고 이상하고, 속시원히 말을 하자니 이건 맨땅에 헤딩 하는것 보다도 더 힘들고, 설사 한다고 해도 피나고 다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 자신이고, 그렇다고 맨땅짚고 헤엄칠 수도 없네요. 해 봐야 별 볼일도 없잖아요. 앞으로 나가는 것도 아니고, 설사 나간다 해도 상처투성이가 되는게 당연하고, 이렇게 해야할 가치가 없다고 봐요. 한국 같으면, 속시원히 하고 싶은 말이라도 할 수 있을텐데… 이건 평생 다시 탈수 있을지도 모르는 외제차, 그것도 새차를 월부도 아닌 현금으로 샀는데, 이렇게 됐으니 자존심이 구겨진 것은 둘째 문제이고, 다시 팔때 가격이 떨어 진다는 것 생각하면 도무지 잠이 안 올것 같아요. 한국에서도 차를 가지고 있었지만, 국산이었고 월부 였는데…

자동차 사고(4)
차 수리를 어떻게 해야 되는지 개인적으로 통역관에게 물으니, 통역관 법칙상 개인적인 의견이나, 답을 줄 수 없다고 합니다. 그 말은 맞는 말인데, 그래도 같은 한국 사람아니까 개인적인 의견을 듣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도 안되다고 하고, 그 얘기를 또 보험사 직원에게 그대로 통역을 하는 것 같았어요. 통역관이 법을 따라서 하는 것을 가지고 불평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요. 나도 보험사 직원이 하라는데로 따라하고 싶지만, 아는게 없고 집 문밖에만 나가면 부담되는 생활을 하는데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집을 나서기만 하면, 사람 달라, 문화 달라, 나무도 달라, 전봇대도 달라, 전선도 달라, 날아 다니는 새도 달라, 하늘도 달라, 구름도 달라, 아스팔트도 달라, 차도 달라, 듣기는 말도 달라 같은 것이라고는 나 자신 밖에 없어요. 한국에서도 나는 나 였고, 여기 미국에서도 나는 나 이니까요. 이런 상태에서 살고 있고, 다른 사람들과 부딫혀야 되고, 내일을 내가 처리 해야 되는 생소한 문화를 접하고 있으니, 모든게 힘겹게만 여겨 집니다. 다행히 통역관이 지혜롭게 나에게 보험사 직원이 해주는 답 이상으로 많은 팁을 주어서 이해가 되고, 안심이 되었습니다. 통역관을 통해서 들은 팁은 미국에서 오래 살았다고 알 수 있는 그런게 아니었습니다. 차사고와 보험에 관해서 잘 안다고 해서 알 수 있는 그런것도 아니었습니다. 이 두가지를 다 가지고 있으면서, 미국 문화와 한국 문화를 아무 문제 없이 이해하고 한국 말과 영어를 아무 문제 없이 그 언어자체의 뉘앙스까지 문제 없이 이해 하는 사람만이 해 줄 수있는 그런 귀하고, 값지며, 깊은 팁이었습니다. 이런 팁을 받고 보니 새삼 내가 가치가 있고, 차사고 당한게 별게 아니구나 하는 마음읗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처음에 미국에 올때 가졌던 기분을 다시 되찿게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하늘이 파랗게 보입니다. 자동차 보다는 내가 가진 꿈과 가치가 더 중요 하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한국에 있었을 때는 느끼기 힘들었던 가치있는 느낌 입니다. 그래, 맞아. 이게 다는 아니야. 그냥 차동차 사고를 당한 것일뿐. 차는 고치면 되는 것이고. 여기에 내 가치와 삶을 실어서는 안되지. 자동차가 내 삶을 살아 주는 것도, 대변 해 주는 것도 아니니까.
전화 통화를 마치고 나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자기 직업을 걸고 팁을 주신 통역관님께 한 없는 감사를 표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 만나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했지만, 거절을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이런 감사한 사람들도 있구나 하고 새삼 깨달았습니다. 앞으로는 미국에서 사는 동안 문화적인 충격으로 인해서 울고 불고 하는 일이 상당히 많이 줄어 드리라 확신 합니다.

미국 유학 생활

1막 1장
너무 힘들어서 다 그만 두고 푹 쉬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참 좋겠는데, 그럴 수도 없고… 다 그만 두고 쉬면 누가 이거 다 해 줘요? 다 들 먹고 살자고 이러는데, 쉬면 누가 밥 주나요. 살기 위해 해야죠. 힘들어도 할 수 없어요. 하는 수 밖에는…
힘들게, 아주 힘들게 미국 유학생 비자를 받아서 미국으로 꿈에도 그리던 유학을 온 한 유학생의 호소 입니다. 누구처럼 재정이 풍부해서 마음대로 여행을 다닐 수도 없고, 다른 학국 유학생들이 식당이나 쇼핑을 가도 같이 따라가기도 겁이나고 해서 항상 시간이 없다는 핑계를 대고 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계속 반복이 되다보니 본의 아니게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많이 받았습니다. 그렇다고 그야말로 없는 살림에 그래도 자식하나 출세시켜 주시겠다고 하시며, 어렵게 유학을 보내주신 부모님 욕을 할 수도 없고… 한국에서 이런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냥 친구들이랑 떡뽁이나, 김밥집에 가서 먹고 싶은것 실컷 먹고 스트레스를 풀면 되는데, 이건 이것도 저것도 할 수 없으니 여간 짜증스러운게 아닙니다. 그렇다고 미국에 그 흔한 떡뽁이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어디 그냥 바람쏘이려 나가려고 해도 차가 없으니, 이것도 안되고, 대중교통이 한국처럼 집 대문 밖에만 나가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하면 할 수록 스트레스만 받으니 답답해서 고함이라도 치고 싶어요. 혼자만 이러는 것 같고 해서 서글퍼지기도 해요. 그렇다고 돌아갈 수도 없고… 어떻게 이대로 돌아가겠어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그렇잖아요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1막 2장
올때 단단한 각오를 하고 왔는데, 막상 와 보니 모든게 생각대로 안되요. 하나에서 열까지 다 안되요. 공부도 안되고, 그렇다고 영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미칠것 같아요. 수업시간에 교실에 앉아 있으면, 다들 제 흉을 보는 것 같아요. 영어도 못하고, 알아 듣지도 못하면서 그냥 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는 바보라고 흉보는 것 같아서 괜히 화가나고, 울화가 치밀어 올라와요. 한국에 있었을 때는 이러지 않았는데, 여기와서 이래요. 룸 메이트도 마음에 안들어요. 사람이 나쁘다는게 아니라, 모르겠어요. 때로는 보기도 싫고 그래요. 다른 사람 만나는 것도 짜증나고, 그냥 다 싫어지고 속상해요. 저 이러다가 어떻게 될까봐 무섭기도 하고, 겁나요. 어제는 교실에서 너무나 사소한 일로 짜증이 팍나서 수업시간에 그냥 가방들고 나왔어요. 교수님이 황당해 하시면서 보시더라고요. 그래도 그냥 나왔어요. 머리 뚜껑이 열릴것 같아서 답답하고, 숨이 막히고, 눈에 보이는게 없고, 그랬어요. 아무 하고라도 한바탕 하겠다는 삐딱한 각오로 나왔어요. 나가면 좀 괞잖을 줄 알았는데, 나오니 진짜로 앞이 캄캄하고, 적막하고, 외롭고, 고독하고, 우울하고, 그냥 울면서 막 달리고 싶었어요. 가슴이 터지라 고함치며 달리고 싶었어요. 확 나와도 아무도 없었어요. 그냥 지나가는 차하고 주차된 차들 그리고 나무, 학교 건물들뿐 아는 사람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사실은 아는 사람이 있을 수가 없죠. 저는 여기 미국에 있고, 아는 사람들은 다 한국에 있는데. 숨이 확 막히면서 서글퍼지고 외로워서 눈물이 쏟아졌어요. 한참 멍하니 서 있는데, 갑자기 외로움이 무섭게 엄습해 왔어요.

1막 3장
어떨게 하나? 망설였어요. 글썽이는 눈눌을 주체 할 수 없어서 손바닦으로 닦으면서 엄습해오는 외로움으로 부터 탈출하려고 이리저리 살폈어요. 아무리 살펴도 갈데가 없었어요. 그래서 눈물을 닦으면서 다시 체념한듯한 걸음으로 학교 건물안으로 향해갔어요. 정말 아무도 없었어요. 무서워지기 시작 했어요. 종종 걸음으로 얼른 건물안으로 들어 갔어요. 막상 들어 왔지만, 어디로 가야될지 모르겠어요. 일단, 화장실로 향했어요. 안에서 거울을 보면서 스스로에게 말했어요. “야, 임마. 너 왜이래? 이러면 안돼. 일어서야돼. 알았지? 자 물로 얼굴 닦고, 챙겨서 교실로 들어가자. 그래, 여기까지 왔는데…” 얼굴 닦고, 마음을 가다듬고는 화장실을 나와서 교실로 향했습니다. 씩씩하게 걸어 갔습니다. 교실 문 앞에 막 도착을 했는데, 다시 주춤해 졌습니다. “지금 다시 들어가면, 다들 쳐다볼텐데…” 마음 한 구석에서는, “아니야, 그래도 들어가야돼. 지금, 돌아서면 안돼.” 결국 쑥쓰러움을 무릅써고 교실 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몸을 구부리면서 교실로 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저를 쳐다보는이가 없었습니다. 이상했습니다. 자신이 뻘쭘 해 졌습니다. 괜히 혼자 쑥쓰러웠습니다. 얼른 자리에 앉을려고 서둘렀습니다. 근데 자리까지 가는데 어찌그리도 시간이 많이 걸리는지… 평시에는 한두걸음이면 떡을 치고도 남는데, 오늘따라 무척이나 멀게만 느껴졌어요. 누가 뒤에서 당기는 것도 아닌데… 겨우 자리에 가서 앉았습니다.

1막 4장
자리에 앉아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가방을 열었어요. 근데 갑자기 눈물이 글썽 해 지내요. 내 유학간다고 친구들이 사준 가방을 봐서일까요? 아니면, 아버지가 사주신 만년필을 봐서일까요? 하옇든간에 눈물이 교실 바딱에 뚝뚝 떨어지내요. 갑자기 교실 바닦이 아몰아몰 거리내요. 얼른 소매로 눈물을 훔치고, 노트와 팬을 가방에서 꺼내었습니다. 그런데 손이 가방을 한번 더 쓰다듬으면서 마음을 달랩니다. 다시한번 소매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고개를 들어 앞을 향했습니다. 듣기는 것은 알지 못하는 소리이고, 보이는 것은 잘 이해가 되지않는 글들입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낮선 사람들 입니다. 다시 한번 혼자라는 것이 확인 됩니다. 왼손이 다시 책상 밑으로 내려가 거기에 있는 가방을 살며시 잡습니다. “친구야, 어디 있니? 보고 싶다. 사준 가방을 보고 만지면서 힘을 얻고 있는데… 고맙다. 내가 잘 해야 되는데… 자꾸 눈물이 나오니 괜히 그렇다. 그래 알았어. 울지 않을께.”
마음을 추스리고 또 추스립니다. 이렇게 그냥 일년이 휙하니 지나가면 안된다는 다짐을 다시 합니다. 이제 겨우 시작인데…

1막 5장
시작이 반이라고도 하는데… 근데 미국에서는 아닌것 같습니다. 시작이 반이 아니라, 아예 첫 걸음도 아닌것 같습니다. 미음을 다져먹고 할려고 하는데도, 어디서 어떻게 시작을 해야 되고, 또 무엇부터 해야 되는지 도데체 감이 잡히지를 않습니다. 한국에서 하면 그래도 어느정도 감도 잡히고, 같이 발을 맟추어 할 사람도 있는데, 이건 그것도 않되는 상황이니, 그저 막막 합니다. “그래, 그만 울고 하자.” 하고 시작 하려고 해도 방향 설정이 되지를 않습니다. 그냥 높은 벽 앞에 서 있는 기분 입니다. 혼자만 이러는 것 같아요. 그러니 자꾸 한심한 생각이 들고, 아래로 자꾸 뜰어 집니다. 이게 유학인가 하는 의구심도 들고, 그저 그냥 그런것도 아니고, 자꾸 심각해 지는 것 같습니다. 모르는 사람은 그러면 뭐할려고 유학 갔냐 하고 비아냥 그리겠지만, 현장에 있는 자신은 다른 것 같습니다. 비싼 돈 들여서 왔지, 내가 유학 갔다는 것을 아는 모든 사람들은 알게, 모르게 기대를 하고 있고, 그 기대를 생각 하면, 한숨이 나오고, 자신이 없어지고, 너무 부담이 됩니다. 떨쳐 버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그냥 스트레스 팍팍 받아 뚜껑이 열렷다 닫겻다 합니다. 기대를 하는 사람들은 이런 나의 속 마음을 알리가 없고, 내 속만 탑니다. 그렇다고 이런 이야기를 마음놓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한국에서 유학온 다른 학생들이 있기는 하지만, 같이 얘기 하는게 좀 이상하게 느껴져요. 모르겠어요. 아마도 서로 모르고, 각각 다른 목표를 가지고 있고, 가고자 하는 길이 달라서 그런거겠죠. 그리고 은근한 경쟁심도 있어서 서로가 눈치를 보고 그래요. 누가 튀어나게 잘 하면 뒤에서 호박씨 까고 그러는거 있잖아요. 미국에 유학 왔다고 다른게 없어요. 오히려 이런게 더 심한것 같아요. 더구나 서로 외롭게 유학하고 있으니 더 심한것 같습니다.
공부도 한국에서는 교수님들이 전달하는 것만 잘 습득을 하면 되는데, 여기 미국은 아닙니다. 교수님이 전달하는 것 잘 습득만 해서는 찍 소리도 못 합니다. 이외에, 내 공부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이게 익숙치 않으니, 고생이 하나 더 펄러스가 되는 샘입니다.
일단 여기까지 왔고 시작을 했으니, 무우라도 뽑아야 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그 무우 조차도 보이지를 않으니 기가차고 입이 마릅니다. 다시보고 또 보아도 까만것은 글씨고 흰것은 와잇보드이고, 들리는 것은 말인데 나와는 상관이 없는 소리 입니다. 알아 들을 수 없고 읽어도 재대로 이해를 할 수 없으니 그럴 수 밖에요. 언제쯤이면, 가능 할지 그저 까마득 하게만 느껴 집니다. 그렇다고 포기하고 돌아 설 수는 없는 노릇이고… 여기까지 왔는데 포기 할 수는 없습니다. 절대로.

1막 6장
그래, 여기서 물러 설 수는 없는 노릇이야. “고지가 바로 저긴데 예서 말 수는 없다.” 다짐하고 또 다짐 합니다. 그리고 꼭꼭 다지고 또 다집니다. 만년필을 꼭 잡아 보고, 가방도 하번더 만져 봅니다. 그리고 두 눈을 살며시 감고 아버지와 친구들을 그려 봅니다. 만년필을 사 주시며 대견스럽게 나를 보시며, 만족한 미소를 머금은 아버지의 얼굴이, “괜찮아, 너는 해 낼 수 있어.” 하시며, 자상히 내손을 지긋이 잡아 주십니다. 미음이 녹아 내리고 햇살이 비칩니다. 그리고 나를 보내며 부러워서 못살겠다고 야단치던 친구들이 또 나를 보며, “야, 괜찮아. 넌 항상 우리들 중에서도 특별히 공부에 관심이 많았고, 이제 그 뜻을 이룰수 있게 되었으니, 걱정하지 말고 하고 싶었던 영어공부 열심히 하고 건강히 있다와.” 하면서 내 어깨를 툭 칩니다. 어느새 나의 입가에도 미소가 찿아 왔습니다. “그래, 알았어. 근데 사실 너무 힘들어. 한국에서 생각하고 왔던것과는 너무나 달라. 한국에서 오기전에 유학에 대해서 잘 알고, 경험도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받고 왔었으면, 상담코치 같은것 받고 왔었으면… 아니, 지금이라도 성공적인 유학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유학 코치를 받아 계획성 있게 잘 해 보았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 합니다. 그런데 과연 유학 코치를 하는 사람은 있는지, 있어면 어떻게 연락을 해야 하는지…”
강의실 수업은 계속 되고 있습니다. 노트와 만년필을 들고 한번 써볼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습니다. 근데, 무엇을 써야 되고, 받아 적어야 되는지 도무지 암흑 입니다. 하 이거야 원. 기가차고 매가 찰 노릇 입니다. 머리가 저절로 숙여지고, 한숨이 저절로 흘러 나옵니다. 흘러나오는 한숨을 막을 길이 없습니다. 그래서 교수님이 와잇보드에 한 두자 적어놓은 글씨를 노트에 글쩍였습니다. 스펠링 적는데도 꽤나 걸리네요. 한 두자 써고 다시 고개를 들어 보드를 보고, 입으로 스펠링을 읊으면서 느트를 보고 써려고 하는 순간 스펠링이 다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어 집니다. 그래서 다시 보드를 보고 스펠링을 읊어 봅니다. 아예 두개 스펠링만 읊고 나서, 노트에 빨리 적어 봅니다. 또 달아나면 낭패 입니다. 스펠링이 도망가기전에 재빨리 적었습니다. 빨리 빨리가 이를때 도움이 됩니다.

1막7장
빨리 적기는 했는데 무슨 뜻인지 통 이해가 되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이곳 유학와서 아주 좋은 친구가 된 전자 사전을 가방에서 꺼냈습니다. 꺼내서 보고는 “야, 반갑다.” 하고는 속으로 속삭이고 영어철자를 떠듬떠듬 찍었습니다. 그리고 들어가기를 치니 사전 뜻이 한글로 나옵니다. 너무나 반가웠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한숨이 나옵니다. “언제쯤 이거 없이 수업시간에 수업을 들을 수 있을까?” 그저 까마득 합니다. 다시 어깨가 축 쳐집니다. 안그래도 여기 유학 온이후로 어깨가 쳐질대로 쳐져있는데… 쳐진 어깨가 더 쳐지고, 숙여진 고개가 더 숙여 집니다. 하, 이거야 참!? 이러고 있는데 교수님이 뭐라고 하니, 학생들이 전부 교과서랑 가방을 들고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교실을 나갑니다. 거의 모든 학생들이 교수님보다 먼저 일어서서 자리를 떱니다. 이거 또한 낮선 풍경 입니다. 한국 대학에서는 거의 없는 일인데… 그래도 교수님이 학생들을 불러서 주의를 준다거나, 주르지는 않아도 눈치를 준다거나, 앉아 있는 학생들이 일어서서 교수님 보다 먼저 나가는 학생들에게 눈초리를 준다거나 하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너무나, 아주 자연스럽고 태연 합니다. 내 자신이 어리벙벙 해 집니다. 잘못 한 것도 없는데 뭔가 잘못 한 듯하고 괜히 이상하고, 불안 하고 그러내요. 이런 별일도 다 있네요. 역시 내가 한국에 있지 않고, 왜국에 있다는게 다시 실감 납니다. 예의가 없다고 해야 되나요, 아니면, 내가 고지식 한 것일까요!? 문화차이라고 해야 맞겠죠. 매일 밥먹는 나라에서 매일 빵먹는 나라에 왔으니, 당연히 문화차이겠죠.

1막 8장
그래서 저도 뻘쭘 하지만, 엉거주춤 일어 섭니다. 그리고는 다시 교실 주위를 둘러 봤습니다. 혹시나 해서요. 교수님이 눈총이라도 주면 어떻하나 싶었습니다. 둘러 보고 또 봐도 눈총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다들 자기대로 움직이고, 갈대로 갈 뿐이었습니다. 황당하니 발걸음이 떨어지지를 않습니다. 이상도 하지요. 한국에서는 강의가 끝나고, 교수님이 강의실을 나서기가 무섭게, 강의실을 박차듯이 나오곤 했는데… 참 알다가도 모를 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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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움에 미련이 있어서 일까요 아니면, 그저 황당막막 해서 일까요? 수업시간에 받아 적은 것이라고는 영어단어 몇개 일 뿐 입니다. 생각하면 할 수록 한심하다는 기분이 듭니다. 푸염적인 한숨이 나옵니다. 너무나 허전하고 멍 합니다. 그래도 강의를 듣고 나면, 최소한 두어장 정도는 받아 적은노트가 있어야 되는데, 이건 반장도 아닌 영어 단어만 몇개 글적글적한 것 뿐이니… 배움에 미련은 고사하고, 마음이 멍하니 뚤린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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