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화

예화 1
주일학교 예배 설교 시간이었습니다. 아동 설교를 하시는 분이 아이들에게 이 다음에 커서 무엇을 하고 싶냐고 질문을 하자, 여러명이 손을 들고 적극적으로 답을 하기를 원했습니다. 몇몇 아이들에게 닦아가서 마이크를 아이들 입 가까이 대었습니다. 한 아이는, “선생님,” 다른 아이는, “사업가,” 또 다른 아이는, “요리사,” 등 다양한 대답들이 나왔습니다. 그 중에는 “소방관” 도 있었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설교자가 한 아이에게 마이크를 대었습니다. 이 남자 아이는 아주 큰 목소리로 용감히, “나는 커서 화장실 전문 청소부가 될 겁니다,” 하고 대답 했습니다. 청중이 대견 스럽기도하고, 엉뚱하기도 한 아이의 대답에 유쾌하게 한바탕 웃었습니다. 아동 설교자는, “하나님이 너에게 아주 특별한 달란트를 주신것 같다.” 라고 아이에게 말 해 주었습니다.

예화 2
한 선교사가 중국에서 선교를 하던 중 여러 중국 아주머니들이 강가에서 빨래 하는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한 아주머니가 담요를 잘 포개어진 상태로 강물에 넣어 물에 적시고는 포개진 상태로 빨래 방망이로 담요를 두드리는 것을 보고 아주머니에게 살짝 물었습니다. “왜 담요를 펴서 빨지않고 포개진 상태로 빱니까?” 아주머니는 “담요가 너무 더러워서 챙피해서 그래요.” 라고 수줍게 답을 했습니다. 더러울수록 펴서 빨아야 묶은 때가 빠지는데… 우리의 죄도 마찮가지 입니다. 활짝펴서 깨끗이 회개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묶은 때가 빠지지 않고 포개진 담요 안에 남아 있듯이, 죄도 마음 깊은 곳에 남게 됩니다.

예화 3
아이가 걷기전에 서기를 먼저 배워야 합니다. 서기를 배우지 않고는 걷기를 할 수 없기때문 입니다. 보통 어머니나 아버지가 먼저 아이가 서도록 도와주고 가르쳐 줍니다. 그리고 아이가 서기를 배운후에 걷기를 가르쳐 줍니다. 아이가 저절로 혼자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이처럼 교회 지도자는 영적인 부모 입니다.

예화 4
어머니가 다리를 틀면서 인상을 쓰는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화장실 가고 싶어? 가고 싶어면 지금가. 참지만 말고.” “아니야, 엄마. 아니야. 화장실 안가도 돼.” 하고 아이가 대답을 했습니다. “정말 괞찮아?” 하고 어머니가 조금 염려스러운 소리로 아이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나 괞찮아. 걱정 하지마.” 하고 아이아 얼굴을 더욱 찡그리며 대답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한손을 엉덩이에 같다 대었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불이나게 화장실로 달려 갔습니다. “엄마, 엄마가 맞았어.” 하고는 아이가 화장실에서 고함을 지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것 같지만, 주께서 아시고, 보고 계십니다. “그래 네가 맞았다.” 라고 칭찬 하실 것입니다.

예화 5
보석상을 경영하는 한 사람이 경기불황으로 판매가 돼지를 않아, 이러나 저러나 마찬가지러니 하고는 손님이 통없어니 심심해서 보석 가격표를 서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싼 모조 가격표를 비싼 진품에 달고, 비싼 진품 가격표를 싼 모조 가격품에 달았습니다. 한참 후에 일을 마친 주인은 그날도 손님이 없이 마감을 하고, 문을 닫았습니다. 다음날은 주인의 아들이 가게를 보게 되었고, 아들과 손님들은 아무것도 무른체 가격표만 보고 보석을 사고팔고 했습니다. 보석을 산 손님들은 물건의 진의를 전혀 모르고 가격만 보고 그가격에 따라 물건을 다루고, 관리를 합니다. 싼 가격에 구입한 보석이 실제는 아주 비싼 진품인데, 가격이 싸니 그 가격에 맞게 다루고, 관리를 하고, 또 비싼 가격에 산 보석이 싼 모조품인데, 가격이 비싸니 그 가격에 맞게 다루고 관리를 합니다. 이런 빗나간 처사가 아주 종종 우리 교회에서도 있습니다. 사람의 겉을 보고 판단하고, 대접을 하는 일이 허다 합니다.

예화 6
아버지가 아들과 테니스를 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자상히 지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들이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여서 연습장에서 벽을향해 공을 치는 지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벽 가까이에서 벽을 향해 공을 치려고 하는 아들에게 아버지가 이렇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공을 쎄게 벽을 향해 치면 공이 강하게 벽을 맞고 튀어 나오니까, 조금 멀리서 공을 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공이 쎄게 빨리 튀어 나오기 때문에 칠 수가 없다.” 라고 아들에게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그러면 안 받아치면 돼잖아요.” 라고 대답 했습니다. 누가 아무리 강하게 쳐도, 받아치지 않으면 싸움이 되지를 않습니다. 한쪽 뺨을 치는 사람에게 다른 쪽도 내어 주라고 하신 주님의 교훈을 다시 한번 묵상 해야 합니다.

예화 7
요즘, 올랜도 근교 인도나 공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가족 단위로 나와 걷거나 조깅을 즐깁니다. 차를 타고 지나가면 정답게 손을 흔들면서 웃는 얼굴로 인사를 합니다. 교육은 걷기나 조깅과 같습니다. 즐겁고 내 기량에 맞게 해야 합니다. 빨리 단숨에 끝내는 단거리 경주가 아닙니다. 교육은 경주가 아닙니다. 교육은 가족단위로 즐기는 걷기나 조깅과 같은 배움의 여정 입니다. 피 교육자 혼자 하는것이 아니라, 가족이 함께 하며, 보람을 가지고, 관계를 더욱 건강히 다지는 것 입니다. 우리 교회도 이와 같습니다. 가족으로써 서로 다져주고, 지켜주고, 같이 걸어주는, 행복한 주님의 몸체 되는 가족 입니다.

예화 8
몇몇 아이들이 동네 골목길에서 숨바꼭질을 하면서 놀고 있었습니다. 술래인 아이가 하나, 둘, 셋, 넷,… 하고 헤아리자 모두들 숨기 시작 했습니다. 그 중 한 아이는 골목 구석에 있는, 아이들 키보다 더 높은 큰 장독을 발견 하고는 좋아라고, 그 큰 장독을 향해 뛰어 갔습니다. 숨기에는 아주 안성 맟춤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다른 아이가 차지 하기전에 빨리 차지 하려고 열심히 뛰어가서, 장독안에 숨어려고 두손을 머리위로 들어 장독 입 가장자리를 잡고는 있는 힘을 다해, 철봉 턱걸이 하듯이 몸을 올렸고, 급기야는 장독안으로 거꾸로 들어가는데 성공 했습니다. 장독이 높기는 하나 폭이 좁아 좀처럼 바로 설 수가 없었습니다. 업친데 겹친격으로 장독안은 빗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아이가 익사를 할 상황 입니다. 물이 고여 있는 장독안으로 떨어지는 소리를 들은 다른 아이들이 긴장되고 놀란 표정으로 장독을 향해 뛰어 왔습니다. 어느 누구 하나 장독에 올라 가거나 장독을 쓰려뜨리려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장독이 너무 높고, 무거워서 꼼짝 달싹 을 하지를 않습니다. 이러던중, 한 아이가 돌맹이를 하나 찿아 와서는 장독 밑둥치를 세게 때리기 시작 했습니다. 곧 장독 밑 바닦이 깨지면서 큰 구멍이 생기고, 물이 세차게 흘러나오기 시작 했습니다. 구사일생으로 장독에 거꾸로 빠졌던 아이는 생명을 구했습니다. 지혜의 샘물은 이와 같은 것 입니다.

Illustration 9
A fellow said to me on the train one day. “Oh, you preachers make me sick.” “I am not a preacher,” I replied; “I wish I were. I don’t know enough.” He said; “I don’t care what you are. You Christians are always talking about a man going to hell because Adam sinned.” “No,” I said, “you will never go to hell because Adam sinned. You will go to hell because you refuse the remedy provided for Adam’s sin. Don’t you go to crying about something that has absolutely been taken care of. If you go to hell you will go over the broken body of Jesus Christ who died to keep you out.”
-From The Double Cure, by Melvin E. Trotter

예화 10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남자 아이 도미닉 (가명)은 지난 밤에 내린비로 물이 불어난 개울에서 놀고 있었습니다. 도미닉의 집 옆에 있는 개울물로 방과 후 늘 물장난을 하곤 했던 개울 인데 도미닉의 집이 언덕위에 있어서 그가 물장난 하고 노는 개울은 언덕위 난간 부분입니다. 언덕 가장자리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부분에는 큰 플라스틱 하수로가 묻혀 있어서 물이 하수로를 통해 언덕 아래로 폭포수처럼 흘러 내립니다. 근데 그날따라, 물살이 세고 물이 많이 불어난 상황이라 잠깐 헛눈을 파는사이 도미닉은 물살에 휘말려 하수구 안으로 빨려 들어 갔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어머니는 사스라치게 비명을 질럿고 이 비명을 들은 바로 이웃에 사는 아저씨가 쏜살같이 하수구를 향해 달려가서, 도미닉을 구하기 위해 하수구 안으로 다이빙을 해 들어 갔습니다. 이를 본 아저씨의 아버지 70순은 훨씬 넘긴 할아버지도 자기 아들이 하수구로 도미닉을 구하기 위해 들어 간 것을 보고는 하수구 안으로 뛰어 들어 갔습니다. 한참 후 도미닉은 20여 미터 길이의 하수구를 물살을 타면서 수영을 해 빠져 나왔습니다. 아주 지치고 놀랐을 뿐만 아니라, 추워서 오들오들 떨면서 달려오는 어머니품에 안겼습니다. 이제는 이웃집 아저씨와 아저씨의 아버지 차례 입니다. 한참을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두 사람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 두사람은 좁은 하수구에 걸려서 목숨을 일었습니다. 구급차와 경찰 TV 방송국뉴스차량등 많은 단체와 사람들이 기다렸지만, 아버지와 아들 이 두 사람은 결국 하수구를 빠져 나오지를 못했습니다. 얼마후 뉴스 기자가 도미닉을 인터뷰를 했는데, 그는 이렇게 말 했습니다. “저는 이 두분이 제가 하수구를 통해 헤엄쳐 나오리라는 것을 아셨더라면… 이 두분이 저를 그많큼이나 사랑하지 않으셨더라면…. 하고는 울먹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냥 우리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하염없는 감사에 북받혀 눈물을 흘리게 합니다.

예화 11
결혼한지 15년이 지난 한 부부가 있었습니다. 잦은 말다툼 때문에 아내가 남편에게 좋은 제안을 했습니다. 박스 두개를 만들어 하나는 아내 이름을 다른 하나에는 남편이름을 써 붙였습니다. 아내가 남편이 한일이나 한말, 또는 하지않은 일로 기분이 상하거나, 속상하면 그 내용을 써서 남편의 이름이 붙은 박스에 넣고, 남편도 이와같은 내용을 써서 아내의 이름이 있는 박스에 넣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딱 한달동안만 하기로 서로 동의 했습니다. 한달이 된 다음날 서로 자기 박스를 가지고 한자리에 앉아 쪽지를 하나하나 읽기로 했습니다. 서로 알게되면, 상대방을 더 잘 생각하고, 잦은 말다툼도 줄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서로 동의 했습니다. 아내가 종이 쪽지에 남편 때문에 속상하고, 기분이 상한 내용을 써서 남편 박스에 넣었습니다. 남편도 매일 내용을 써서 아내의 박스에 넣었습니다. 날이 갈 수록 남편 박스는 종이 쪽지로 가득차게 되었습니다. 아내의 박스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이제 한달이 되어 서로 자기 박스를 가지고 한자리에 앉아서 남편이 먼저 자기박스를 열고 쪽지를 하나하나 읽기 시작 했습니다. “당신이 오늘 짜증스럽게 나에게 고함을 쳐서 기분이 상함” 라고 읽고는 “내가 그랬었나? 이해가 되네.” 그다음 쪽지는 “당신의 까칠한 수염 때문에 밥맛이 떨어 짐” 라고 읽고는 “이럴수도 있구먼.” 이렇게 하나하나 쪽지를 다 읽었습니다. 이제 아내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아내가 박스를 열고 첫 쪽지를 읽었습니다. “여보, 사랑해요.” 하고 읽었습니다. 그 다음 쪽지를 들고 “여보, 당신을 사람해요” 라고 읽었습니다. 아내의 박스에 남편이 넣은 모든 쪽지는 하나도 빠짐없이 “여보, 사랑해요” 였습니다.
우리 주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습니다. 그냥, “여보, 사랑해요.” 와 같은 사랑 입니다.

예화12
영국 상선이 강하게 몰아치는 폭퐁우를 피하기 위해 사모아에 정착을 할려고 닺을 내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닺을 내리는 중에 큰 폭풍우가 밀려와, 내리던 닺을 올리고 다시 사나운 파도가 무섭게 일렁이는 바다를 향해 들어 갔습니다. 바다로 들어간 배는 사납게 몰아치는 파도를 따라 이리저리 떠 돌아 다녔지만, 안전하게 폭풍우를 견디어 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와 같습니다. 때로는 안전한 삶이 담대히 대적을 향해 앞으로 나갈때 이루어 집니다. 성도는 항상 담대함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화13
어느날 딸이 어머니에게 흥분된 목소리로 이렇게 물었습니다. “엄마, 하나님이 우주 보다도 더 커다는게 맞지?” 어머니도 딸이 대견해서, “응 그래. 맞아.” 라고 기쁘게 대답 했습니다. “그 하나님이 믿는자 안에 사는 것도 맞지?” 라고 딸이 다시 경이로운 눈빛으로 물었습니다. “응, 그것도 맞아.” 라고 어머니가 대답 했습니다. 그러자 딸이, “우주 보다 더 큰 하나님이 아주 작은 믿는자 안에 들어와 산다면, 그 컨 하나님이 믿는자를 통해서 보여야 되는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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